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어둠 속의 USB: 두 세계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의 의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어둠 속의 USB: 두 세계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의 의미

글로벌 팝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사브리나 카펜터가 새 앨범 ‘맨즈 베스트 프렌드(Man’s Best Friend)’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지난 29일 현지 시각으로 공개된 이번 앨범은 총 12곡으로 꽉 채워졌는데, 발매 전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타이틀곡 ‘티어스(Tears)’의 뮤직비디오 티저에서 그녀는 하늘색 투피스 차림으로 공포 영화를 연상케 하는 기묘한 배경 속에 등장해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미 선공개 곡 ‘맨차일드(Manchild)’로 빌보드 ‘핫 100’ 정상을 차지하며 재치 있는 가사와 풍자로 평단의 호평을 받은 터라, 이번 앨범에 쏠린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사브리나 카펜터는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이번 작업이 “억지로 쥐어짜 내는 과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둔, 모든 것이 우아하게 맞아떨어진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사실 그녀의 행보는 대기만성형 스타의 정석을 보여준다. 2013년 디즈니채널의 아역 배우로 얼굴을 알린 후 가수 활동을 병행해 온 그녀는 2022년 ‘난센스’와 ‘페더’의 연이은 히트로 존재감을 키웠고, 지난해 테일러 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2024년은 사브리나 카펜터에게 기념비적인 해였다. 싱글 ‘에스프레소’는 발매 한 달 만에 스트리밍 2억 회를 돌파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해당 곡이 수록된 앨범 ‘쇼트 앤 스위트’는 ‘빌보드 200’ 1위에 오르며 커리어 하이를 경신했다. 이러한 성과는 제6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팝 솔로 퍼포먼스와 최우수 팝 보컬 앨범 부문 2관왕이라는 영예로 이어졌다. 총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거머쥔 그녀는 이제 명실상부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단절된 도시 테헤란, 생존을 위해 음악을 공유하는 사람들]

지구 반대편, 화려한 조명 대신 어둠이 내려앉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음악이 전혀 다른 의미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2025년 말, 리알화 가치 폭락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촉발된 시위가 해를 넘겨 2026년 1월까지 이어지자 당국은 일주일 넘게 전국적인 인터넷 차단을 감행했다. 8,100만 명의 시민이 외부와 단절된 디지털 암흑기 속에서, 음악은 단순한 유희가 아닌 고립과 공포를 견디게 하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테헤란의 음대생 R.A. 씨는 인터넷이 끊긴 기간 동안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USB 드라이브를 교환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전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마비된 상황에서 그들은 손에서 손으로 디지털 파일을 옮기며 음악을 공유했다. 그녀는 “우리는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다. 어떻게든 들어야만 했다”며 당시의 절박함을 토로했다. 평소 유튜브를 통해 거장들의 연주를 분석하며 학업을 이어갔던 R.A. 씨에게 인터넷 차단은 배움의 길마저 막아버린 처사였다. 비록 학업에 필요한 자료 접근은 제한되었지만, 그녀는 친구들이 건넨 USB 속에 담긴 록 음악과 저항 가요를 들으며 새로운 장르에 눈을 떴고, 억눌린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이란의 카페들은 단순한 사교 공간 이상의 역할을 했다. 한 카페 주인이 틀어놓은 수십 년 전의 흘러간 이란 가요들은 사람들에게 단순했던 과거로의 도피처를 제공했다. 검열과 차단 속에서도 지하에서는 은밀하게 콘서트가 열렸고, 음악가 친구들은 우울감에 빠져 악기를 놓으면서도 듣는 행위만큼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고국을 방문했다가 발이 묶였던 비엔나 거주자 B.R. 씨에게도 음악은 위로였다. 인터넷 차단으로 귀국 항공편 취소 사실조차 알 수 없었고 내비게이션마저 먹통이 된 혼란 속에서, 그는 여자친구와 과거에 주고받았던 저장된 노래들을 반복해 들으며 불안을 달랬다. 사브리나 카펜터가 전 세계 스트리밍 차트를 휩쓸며 팝의 정점을 찍는 동안, 연결이 끊긴 이란의 젊은이들은 낡은 USB와 저장된 파일에 의지해 각자의 방식대로 삶과 문화를 지켜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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