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장에 울려 퍼진 뜻밖의 드럼 비트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를 묘사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흥미로운 이력이 있다. 그는 단순한 헤비메탈 마니아를 넘어 실제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직접 드럼 스틱을 쥐고 연주를 선보인 장면은 연일 뉴스에 오르내렸다. 꽤나 신선하고 파격적인 외교적 제스처였다. 하지만 이 상황이 유독 낯설고 생경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일본의 헤비메탈은 여전히 굳게 닫힌 금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본 대중문화가 전면 개방되면서 영화, 만화, 문학, 음식 등은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일본의 제품이나 여행지는 스스럼없이 소개된다. 유독 음악, 그중에서도 일본어 가사가 포함된 노래만큼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혀 암묵적인 방송 금지 처분을 받고 있다. 25년 차 현직 라디오 PD조차 방송에서 일본어 노래를 단 한 번도 선곡하지 못했다. 몇 년 전 레트로 열풍을 타고 일본 시티팝이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때조차 방송에서는 틀 수 없었다. 그저 관행상 어렵다는 궁색한 변명 말고는 뚜렷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은밀하게 소비되는 J-록의 전설들 결국 일본 헤비메탈은 극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은밀하게 즐기는 하위문화로 봉인되었다. 그렇다면 다카이치 총리의 젊은 시절을 뜨겁게 달궜을 1980년대 일본 메탈의 명곡들은 무엇일까.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밴드는 단연 ‘엑스 재팬(X Japan)’이다. 록 발라드 ‘엔드리스 레인(Endless Rain)’은 국내 노래방에서도 종종 들릴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드러머 요시키와 보컬 도시가 주축이 된 스쿨 밴드에서 출발한 이들은 1988년 인디 레이블에서 낸 앨범으로 주목받았다. 이듬해 소니 레코드와 손잡고 메이저 데뷔 음반 ‘블루 블러드(Blue Blood)’를 발매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베이시스트 다이지, 기타리스트 히데와 파타가 합류한 엑스 재팬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도 다카이치 총리의 최애곡은 ‘러스티 네일(RUSTY NAIL)’로 알려져 있다. 총리가 직접 방송 무대에 올라 이 노래를 열창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엑스 재팬이 대중의 마음을 훔쳤다면, 코어 팬들이 80년대 최고로 꼽는 밴드는 ‘앤섬(Anthem)’이다. 1981년 결성돼 일본 헤비메탈의 황금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은 숱한 멤버 교체와 해체, 재결성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탄탄한 리듬 파트 위로 쏟아지는 화려한 기타 솔로, 박진감 넘치는 리프가 일품인 ‘바운드 투 브레이크(Bound to Break)’는 다카이치 총리가 족히 수백 번은 들었을 명곡이다. 굳이 일본 헤비메탈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장르적 완성도만 놓고 보아도 훌륭한 트랙이다.
무대를 넘나드는 뜻밖의 헌정 릴레이 정치 무대에서 흘러나온 뜻밖의 헤비메탈 연주가 외교의 딱딱한 분위기를 환기했다면, 대중음악 축제에서는 아티스트들의 파격적인 곡 해석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2026 코첼라 페스티벌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음악적 교류로 들썩였다. 토요일의 헤드라이너는 단연 저스틴 비버였지만, 이날 축제는 그야말로 비버를 향한 거대한 헌정 무대인 ‘비버첼라(Bieberchellas)’를 방불케 했다. 주인공이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숱한 동료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무대를 달궜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밴드 기스(Geese)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곡 ‘2122’ 무대 중간에 비버의 초창기 메가 히트곡인 ‘Baby’의 한 구절을 기습적으로 삽입해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과거 유행했던 팝 펑크 컴필레이션 앨범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애디슨 레이 역시 비버를 향한 오마주, 혹은 자신의 ‘Headphones On’ 뮤직비디오를 기념하는 보라색 아메리칸 어패럴 후드티를 입고 등장해 열기를 더했다.
세대와 장르를 허무는 페스티벌의 마법 올해 코첼라는 유독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자신만의 색깔로 재창조하는 커버 무대가 풍성하게 쏟아졌다. 네덜란드 아티스트 요스트(Joost)가 크레이지 프로그(Crazy Frog)를 무대로 소환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사브리나 카펜터는 배리 매닐로우의 클래식 팝 ‘코파카바나(Copacabana)’를 자신의 곡 ‘Feather’에 절묘하게 녹여내며 세대를 초월한 감각을 뽐냈다.
로스앤젤레스의 밥 베이커 마리오네트 극단이 애디슨 레이의 ‘Diet Pepsi’를 벤 플랫 버전으로 다시 비틀어 선보인 무대는 이번 축제의 가장 기발한 순간 중 하나였다. 장르와 세대, 심지어 국경과 금기까지 가볍게 뛰어넘는 이런 음악적 일탈은 대중에게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열광적이었던 첫 주말을 뒤로하고 다가오는 코첼라의 두 번째 주말에는 또 어떤 엉뚱하고 유쾌한 변주가 기다리고 있을지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